무위대화1 - 이루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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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99회 작성일 22-08-18 16:59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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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대화 1 “이루려 하지 마라” 바질 나무 한 그루가 죽어가고 있다. 욕심이 부른 참사다. 잘 자라라는 의도로 녀석의 뿌리를 땅 속 깊이 눌러주었었다. 다른 나무들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듯 보였다. 대여섯 그루의 바질 나무 중 그 녀석만 유난히 쓰러져 있었던 터였다. 눈에 밟혔었다. 며칠 뒤 다시 밭에 가 보니, 뿌리 눌러 준 그 바질 나무만 시들하고 다른 녀석들은 멀쩡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하다.
비 오시는 날, 마침 시간이 되어 바질 잎을 수확하던 중이었다. 잎을 따 줘야지 하면서도 이런저런 일에 밀려 수확이 미뤄지고 있었다. 비가 간간 뿌렸지만, 줄선 일정을 생각하면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배경 삼아, 비와 몸이 하나가 되어 바질 잎을 훑었다.
집 뒤 야트막한 야산 한쪽을 손바닥만한 밭으로 만들어 바질을 심었었다. 씨앗 불려 싹 틔우고 물 줘 가며 애지중지 키워 밭에 옮겨 놓은 녀석들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옥수수와 함께 씨앗 단계에서부터 키워 본 녀석들인지라 유난히 애정이 깊다.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주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욕심이 부른 참사. 비 오시는 날, 뿌리 눌러 준 바질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바질과 옥수수가 커가는만큼 내 안에서도 욕심이 자라났다. ‘내’가 해냈다는 오만,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칭찬’ 받고 싶은 아상이 스멀스멀 커졌던 게다. 다른 이들과 나누며 함께 축하하고 싶다는 의도도 물론 있었다. 그러한 의도 뒤엔 욕심과 아상 또한 또아리틀고 있었던 거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평소 마음에 새겨두어 삶으로 살아내려 하지만 번번히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곤 한다.
나비가 스스로의 힘으로 날개를 펴야 하듯 바질 또한 스스로의 힘으로 땅에 뿌리를 내려야 했던 거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 즉 인위의 삶은 자신도 모르게 ‘무서운 죄악’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으로 실천하며 사는 일은 멀기만 하다.
그래서 무위당은 추상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대화 또는 사람 사이에 관계 맺기 또한 마찬가지다. 욕심과 아상에 기초해 즉, 인위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는 대화나 관계 맺기는 당장은 아닐 수 있어도 언젠가 동티나기 마련이다. 상대는 귀신같이 안다. 설사 상대가 눈앞에서는 순응하는 듯 보이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반발심과 분리감이 형성되고야 만다.
무위당은 도둑을 만나면 도둑의 마음이 되어 들으라 했다. 똥물에 빠진 친구가 있다면 밖에서 나오라 말만하지 말고 그 안에 함께 들어가라고도 했다. 자연은 편을 가르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더럽네 깨끗하네, 내편이네 네편이네 하며 갈라 싸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내가 옳으네 네가 옳으네하며 시비분별을 일삼기도 한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때마다 무위당의 말을 주문삼아 꼭꼭 되새기련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2022년 8월 18일 글. 신호승 / 무위당대화학교 기획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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